중동을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선 감정의 동요를 무시한 채, 차가운 분석을 견지하면서도 인간적 고통을 마주보는 시선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그 연재의 첫 시작으로, 중동의 지형을 뒤흔든 카터 독트린과 1980년대 중동의 역학구도를 이야기합니다.
▶ 카터 독트린: 단순한 선언인가, 지정학적 선언전쟁인가
1979년은 중동 현대사에서 분수령 같은 해였습니다. 이란에서는 팔라비 왕조가 무너지고, 호메이니가 귀국하면서 신정체제가 수립됐습니다. 그 직후,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미국은 석유와 안보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개입 가능성을 공식화합니다. 이것이 바로 카터 독트린입니다.
“페르시아만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다.” 이 선언은 단순한 방어의지가 아니라, 세계 석유경제를 지배하려는 전략적 개입의 서막이었습니다.
▶ 1980년대 중동의 격랑: 지역 패권, 종교, 그리고 대리전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은 그 중심이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침공은 시아파 이슬람 혁명의 확산을 두려워한 수니파 국가들의 지지를 받았고, 서방은 암묵적으로 그를 지원했습니다. 그러나 이란 콘트라 사건(Iran-Contra Affair) 등 미국의 이중 플레이는 신뢰 붕괴를 가져왔습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1982) 역시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거점을 제거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실상은 정치적 재배열과 헤즈볼라의 탄생으로 이어졌습니다.
1차 인티파다(1987)는 팔레스타인 내부의 사회적 절망이 폭발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더 이상 정치적 대표가 아닌 민중의 몸부림으로 읽혀야 하며,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중 무시에 대한 반응이기도 했습니다.
▶ 탈냉전 전야의 중동: 평화의 기회인가, 폭풍의 예고인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즈음, 중동은 새로운 국면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중동 국가들은 이제 자율적인 생존 전략을 수립해야 했고, 이는 더 많은 내부 경쟁과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서방의 개입은 그 자체로 정치적 균형을 무너뜨리는 요소였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그림자는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 비판적 결론: 카터 독트린은 누구를 위한 전략이었는가
카터 독트린은 미국의 안보와 세계경제 질서를 위한 전략이었지, 결코 중동의 안정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중동 내부의 복잡한 역사와 종교, 민족 감정에 대한 몰이해는 지속 가능한 평화 전략의 부재로 이어졌고, 그 여파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합니다.
이 연재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며, 미국-중동 관계의 궤적을 비판적 시각에서 살펴봅니다.
'자기개발서,고전 늘책을 읽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동을 이해하는 첫걸음 : 걸프전과 그 이후 – 미국은 중동을 지킨 걸까, 지배한 걸까? (3) | 2025.06.15 |
---|---|
중동을 이해하는 첫걸음 : 이라크는 왜 쿠웨이트를 침공했는가 – 걸프전의 진짜 이유를 읽다 (3) | 2025.06.15 |
『붙잡지 않은 삶』 – 집착을 내려놓았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진짜 삶 (4) | 2025.06.11 |
『부의 추월차선』 10주년 스페셜 에디션당신은 지금, 어느 차선에서 달리고 있습니까? (12) | 2025.06.08 |
서평 『이게 되네? 챗GPT 미친 활용법 71제』 — 일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버리는 71가지 기술 (2) | 2025.06.03 |